1. 풀꽃나무에서 만난 한국사_완료 44

14. K-culture의 시작 - 닥나무

얼룩말처럼 껍질에 줄무늬가 선명한 나무들... 양버즘나무 같은 동그란 열매가 차츰 딸기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꾸지나무다. 꾸지나무는 한지를 만든다는 구지構紙에서 유래한다. 한지하면 닥나무지만 꾸지나무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쓰인 나무였다. 수 차례 거란을 물리친 고려는 덕종 대부터 여진, 탐라, 일본의 호족들로부터 조공을 받으면서 송나라, 거란과 대등한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군림한다. 이복형 덕종과 정종을 이어 11대 문종(1019~1083)이 즉위한다. 이들 셋은 고려-거란 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현종을 유일하게 받아준 공주 귀족 김은부의 딸들이 낳은 왕이었다. 문종은 최충과 함께 협상과 조정을 통한 문치 정책을 펴 나갔다. 해동공자라는 최충은 구재학당이라는 문헌공도를 설립해 유학 보급에 힘썼으며,..

13. 고려-거란 전쟁 - 굴참나무

신림동의 굴참나무...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보호수다. 지금의 굴참나무는 약 250살 정도의 후계목으로 추정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첫번 째 과제는 정치적 안정이었다. 그는 발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의 유민을 받아들였다. 또한 지방 호족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중앙과 지방이 연결되면서 고려는 차츰 단일민족 의식이 싹터 나갔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지방 호족들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렸다. 태조 왕건이 승하하자 장남인 2대 혜종(912~945)이 즉위한다. 나주 호족 출신으로 버들..

12. 관심에는 관심으로 - 버드나무

춘삼월의 꽃샘추위를 보낸 4월... 연둣빛으로 기지개를 펴는 나무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연둣빛은 새순이 아니라 꽃이다. 가지가 쭉쭉 ‘뻗은’ 모습에서 혹은 가지가 부드럽다는 부들나무에서 유래하며 강가나 우물가에 흔한 버드나무에는 고려 태조 왕건(877~943)과 장화왕후의 ‘버들잎 설화’가 전한다. “왕건이 우물을 찾다가 금성산 남쪽의 상서로운 구름을 보았다. 그곳에서 빨래하던 처녀에게 한 모금의 물을 청하자 처녀는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넸다. 왕건이 까닭을 묻자 “급히 마시다가 혹 체할까 하여 그리 하였나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감동한 왕건은 청혼하였다. 황룡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꿈을 꾸었던 그 처녀는 태조 왕건의 둘째 부인 장화왕후 오씨였다.” 버드나무는 그 껍질에 살리신 성분이 있어 ..

11. 임금님 귀는? - 산수유

노란 산수유... ‘풍륜’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로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자전거 여행(2000년)”을 쓴 김훈 작가는 사물을 꿰뚫는 그만의 글쓰기로 산수유에게 말을 건넨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정기를 보강하는 산수유는 사장의 푸념을 광고하는 역발상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31대 신문왕 당시 정치적 안정을 찾은 통일신라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8세기 초 당과의 관..

10. 몰가부 로맨스 - 할미꽃

이름만 들어도 애잔한 할미꽃... 늙은 시어머니 풀, 노고초老姑草 혹은 머리 하얀 노인, 백두옹白頭翁으로도 불리는 할미꽃은 구부러진 꽃대와 꽃이 지고나면 할머니처럼 산발한 머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645년 안시성 전투의 승리로 지지기반이 불안했던 연개소문은 권력을 확실히 장악한다. 그는 태대대로에 올라 남생, 남건, 남산 세 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추진한다. 한편 호시탐탐 고구려에 설욕을 노리던 당태종이 돌연 사망하자 당고종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한동안 고구려를 침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에 포위된 것이다. 661년 신라 30대 문무왕(626~681)이 즉위한다. 문무왕은 무열왕의 기세를 몰아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쉽지 않았다. 668년 연..

09. 세 명의 남편 - 모란

매화, 살구꽃, 복사꽃... 봄이 지는 아쉬움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다리겠다는 시인의 설움을 떠올리는 5월이다. 모란은 굵은 뿌리에서 돋아나는 새싹이 수컷의 형상과 같다는 ‘모牡’와 꽃 색깔이 붉다는 ‘단丹’의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삼국사기(1145년)”에는 한국사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647)의 모란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 황제가 모란꽃 그림과 그 씨앗을 보내와서 진평왕이 덕만에게 보여주었더니, 덕만이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는가?”라고 하니 “꽃은 매우 예쁘지만 그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것은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씨앗을 심었더니 과연 그러하였고, 우리나라의 모란꽃이 이때부터 많아지기 시작했다.” 신..

08. 얼레리 꼴레리 선화공주 - 마

아파트 뒷산의 계단 철책을 휘감은 ‘마’의 줄기에 참나리처럼 동그란 주아가 달렸다. 마의 뿌리는 고구마, 색깔은 감자와 비슷하다. 아삭한 마의 성분인 뮤신은 끈적거리며 식이섬유가 많아 장 건강에 좋다. 아미노산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며, 자양강장에 좋아 산약山藥으로 불린다. 뿌리에는 이눌린이 많아 당뇨와 비만에 좋다. 마는 도토리, 칡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에게 느릅나무가 있었다면 백제 30대 무왕(580~641)과 선화공주 사이에는 마가 있었다. “삼국사기(1145년)”에 의하며 무왕은 29대 법왕의 아들이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에 의하면 그는 신라 26대 진평왕(565~632)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들어가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07. 고구려는 건들지 마라 - 느릅나무

공원의 버드나무, 메타세쿼이아, 양버즘나무, 느릅나무, 벚나무... 그 중 느릅나무 아래서 연인의 팔베개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청춘들에서 오래 전 보았던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1924년)"을 떠올린다. 여기서 집을 뒤덮은 커다란 느릅나무는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암시하는 나무였다. 느릅나무는 껍질을 벗겨서 물을 불리면 끈적끈적하게 힘없이 늘어진다는 '느름'에서 유래한다. 껍질은 피부질환, 비염, 축농증 등에 효과가 있어 ‘코나무’라 불린다. 또한 전분이 많은 속껍질은 가루로 빻아 음식을 만들던 구황식물로 "구황촬요(1554년)"에는 평소에 솔잎과 느릅나무 껍질을 흉년에 대비해 비축할 것을 추천한다. “삼국사기(1145년)”에는 온달장군의 느릅나무 일화가 전한다. “고구려 ..

06. 천마총의 말다래 - 자작나무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고, 오래된 바이칼 호는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며 부랴트어로 ‘샤먼의 호수’ 혹은 ‘풍요의 호수’라는 뜻이다. 광활한 벌판에 펼쳐진 하얀 자작나무가 차창을 가르며 지나친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나 북유럽의 고위도 지역에서 자라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험한 나무로 신성시된다. 바이칼 호의 샤먼(부르한) 바위도 샤먼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무령왕릉 발굴로 전 국민의 관심 속에 황남대총에 앞서 이루어진 천마총의 발굴에서 4점의 국보와 1만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가 있었다. 천마와 테두리의 덩굴 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 벽화와 같은 양식이었다. 게다가 출出자 모양..

05. 하루 만에 끝난 발굴 - 금송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오는 길... 언젠간 가야할 곳으로 마음에 담아둔 무령왕릉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금송金松이 우뚝 서 있다. 일본 원산의 금송은 잎 뒷면이 황백색인데서 유래하며 잎 모양이 우산처럼 펼쳐져 있어 영어로는 Japanese umbrella-pine이다. 일왕을 상징하는 나무로 일본에서는 궁궐의 기둥이나 관재에 널리 쓰이는 나무다. 그러한 금송이 무령왕릉에? 1971년 공주 송산리 벽돌무덤 5·6호 고분군의 장마철 배수로 공사 중, 삽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부딪혔다.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굴로 한국판 투탕카멘이라는 무령왕릉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발굴에 걸린 시간은 불과 단 하루였다. 21대 개로왕(417~475)이 전쟁터에서 사망한 후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의 운명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