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의 꽃샘추위를 보낸 4월... 연둣빛으로 기지개를 펴는 나무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연둣빛은 새순이 아니라 꽃이다. 가지가 쭉쭉 ‘뻗은’ 모습에서 혹은 가지가 부드럽다는 부들나무에서 유래하며 강가나 우물가에 흔한 버드나무에는 고려 태조 왕건(877~943)과 장화왕후의 ‘버들잎 설화’가 전한다.

“왕건이 우물을 찾다가 금성산 남쪽의 상서로운 구름을 보았다. 그곳에서 빨래하던 처녀에게 한 모금의 물을 청하자 처녀는 물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넸다. 왕건이 까닭을 묻자 “급히 마시다가 혹 체할까 하여 그리 하였나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감동한 왕건은 청혼하였다. 황룡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꿈을 꾸었던 그 처녀는 태조 왕건의 둘째 부인 장화왕후 오씨였다.”
버드나무는 그 껍질에 살리신 성분이 있어 통증 완화에 특효인 나무였다. 살리신을 개량한 살리실산은 쓰고 구토와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이에 바이엘사의 호프만이 살리실산과 무수 아세트산을 반응시켜 만든 것이 세계 최초의 의약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스피린이다.
신라는 48대 경문왕에서 51대 진성여왕까지 왕위를 둘러싼 모반과 지방 호족들의 반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종과 애노의 난 이후 견훤은 전라도 일대에 후백제를, 신라 47대 헌안왕(?~861)의 서자 혹은 경문왕의 아들로 추정되는 궁예는 송악에 후고구려를 세웠다. 후삼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905년 개성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겨 태봉을 세운 궁예는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신정적 전제주의를 추구했다. 미륵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7천만년 후 세상에 와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였다. 궁예는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미륵관심법으로 신하와 백성을 위협하며 민심을 잃고 있었다. 심지어 왕비마저 관심법으로 간통을 저질렀다며 두 아들과 함께 잔혹하게 살해했다. 왕건이 나주 지역을 점령하고 돌아오자 궁예는 “그대가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나의 미륵 관심법으로 그대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느니라.” 추궁한다. 위기에 처한 왕건은 즉시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고, 궁예는 자신의 미륵관심법에 만족하며 왕건에게 말안장을 상으로 내렸다. 궁예가 아닌 왕건의 관심법이 통한 것이다.

918년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했다. 태조 왕건은 건국을 도운 지방 호족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혼인을 맺어 안정을 도모했다. 그 가운데 버드나무의 장화왕후 오씨가 있었던 것이다.
고려와 후백제는 견원지간이었다. 920년 견훤이 대야성을 점령하자 신라는 왕건의 도움으로 백제를 물리친다. 924년 고려와 후백제는 조물성 전투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화친을 맺었지만, 인질로 보낸 견훤의 조카가 갑자기 죽으면서 전쟁이 재개되었다. 927년 신라를 공격하여 55대 경애왕(858~927)을 자결시킨 후백제는 56대 경순왕(897~978)을 즉위시켰다. "삼국사기" 등은 당시 경애왕이 돌의 홈 모양이 구불구불한 전복 껍질과 같다는 포석정鮑石亭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임금이라도 국운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그것도 한겨울에 밖에서 술판을 벌였을까?
왕건은 오천의 군사를 이끌고 나섰으나 철군하는 후백제와의 공산 전투에서 부하 신숭겸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만 건지고 도주한다. 그러나 견훤은 정통 왕조의 경애왕을 자결시켜 민심을 잃었고, 왕건은 민심을 얻었다. 930년 왕건은 견훤과의 고창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잡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멸망의 기운은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935년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을 왕위에 앉히려 하자 첫째 신검은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에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은 아들에게 복수를 위하여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왕건에게로 귀부한다.
935년 경순왕도 왕건에게 투항한다. 이때 마의태자는 천년 사직을 그렇게 넘겨줄 수 없다며 금강산에 들어가 일생을 마친다. 마의태자는 이광수의 소설 “마의태자(1928년)”에서 태자가 뻣뻣한 삼베옷(마의)을 입고 거친 음식만 먹으면서 일생을 마쳤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936년 신검의 후백제도 견훤이 이끄는 고려에 멸망했다. 견훤은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켰고, 버드나무 잎으로 체를 피했던 태조 왕건이 마침내 고려 왕조를 개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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