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을 가득 메운 벚꽃과 상춘객... 그렇지만 원래 꽃 중의 꽃 복사꽃이었다. 조선시대 꽃구경도 첫째는 복사꽃, 매화나 살구꽃은 그 다음이었다. 중국 전설에 활쏘기 명수인 ‘예’가 복사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복사나무를 싫어했기 때문에 복사나무는 집안에 심지 않았고,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지만 복사꽃은 부모님 살아실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효도화였다. 1776년 노론의 끊임없는 모함과 비방을 극복하고 즉위한 정조(1752~1800)는 선포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노론은 경악했다. 그 중에 홍상범은 부친 홍술해가 공금 횡령죄로 위리안치되자, 1777년 경희궁 존현각 자객 침투 사건을 일으켰다. 홍술해는 나경언의 고변을 사주한 홍계희의 아들이었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