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계절 풀꽃나무_3

20. 동물의 왕국, 기린초와 물토란

flower-hong 2025. 5. 14. 20:36

동물원의 호랑이, 사자, 원숭이, 코뿔소, 기린... 그 기린이었을까? 꽃잎이 ‘기린의 뿔’을 닮았다는 기린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기린초는 다육질 잎에 수분이 많아서 바위 주변이나 돌밭처럼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어린 순은 삶거나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뾰족한 꽃잎들이 뭉친 꽃송이는 돌나물과 비슷하지만 계란형 잎이 선형의 돌나물과는 다르다.
 

기린초
돌나물


원래 기린은 머리는 용, 몸은 사슴, 꼬리는 소, 다리는 말을 닮아서 하늘을 날고 단숨에 천 리를 간다는 전설상의 동물이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기린아’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동물원의 기린은 기다란 목과 머리에 우뚝 솟은 뿔, 몸의 기하학적 무늬를 가진 동물이었다. 이는 명나라의 환관 정화가 남해 원정 시 벵골(방글라데시)에서 받았던 조공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화는 영락제의 명에 따라 160여 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인도,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해안까지 항해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스코 다가마의 아프리카 희망봉 발견은 그로부터 80여 년 후인 1488년이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과 마젤란의 세계 일주(1520년)보다 100여 년 앞서 이루어진 대항해였다. 후세의 환관들에게 정화는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과 종이를 발명한 채륜과 같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1416년 정화가 4차 항해에서 돌아왔다. 세조처럼 조카인 건문제를 내쫓고 황제에 오른 영락제에게는 큰 경사였다. 정화가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기린(?)을 바치면서 모두가 영락제의 공덕이라는 ‘용비어천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전설상의 기린과 달라서 시큰둥했던 영락제도 정치적 안정을 위해 기린으로 인정한다. “태종실록”에는 축하 사절단을 파견한 기록이 나온다.
 
「공조판서 권충, 총제 이징을 보내어 경사(남경)에 갔으니 기린이 나타난 것을 하례하기 위함이었다.」
 
그보다 5년 앞선 1411년 태종 당시 조선에는 일본에서 대장경을 얻기 위해 조공으로 바친 코끼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기이한 그 모습이 신기했으나 코끼리는 하루에 너 댓 말이나 되는 콩을 먹어치우는 골칫거리 대식가였다. 그러던 중 코끼리를 보러 왔던 공조전서 이우가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다가 그만 밟혀 죽고 말았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아 길들이면 말귀와 의도를 파악할 정도로 영리한데 침까지 뱉고 놀렸으니...
 
조정에서는 코끼리를 죽이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여수의 장도로 유배보낸다. 6개월 후, 코끼리가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상소에 태종은 육지에서 기르도록 명한다. 1420년 전라도관찰사가 코끼리 식량 문제로 다시 상소를 올리자 이번에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번갈아 관리하도록 했으나 코끼리는 식량을 축낼 뿐만 아니라 노비까지 죽였다는 장계가 올라온다. 이쯤되면 코끼리는 조공이 아니라 시한폭탄이었다. 이에 세종은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는 명을 내린 후 코끼리에 대한 기록은 자취를 감춘다.
 

알로카시아, 물토란


그렇다면 코끼리풀도 있을까? 땅의 달걀이라는 토란土卵을 영어로 콜로카시아colocasia 또는 넓적한 잎이 코끼리 귀를 닮아 ‘코끼리귀elephant’s ear’라 부른다. 서울식물원에서는 아래로 갈수록 넓적한 줄기가 코끼리 발을 닮았다는 ‘덕구리란elephant’s foot‘도 만났다. 덕구리는 입구가 좁고 목이 긴 술병인 돗쿠리에서 유래한다. 또는 잎이 말꼬리처럼 늘어져 있어서 ponytail palm으로도 불린다. 그야말로 식물 속 동물의 왕국이다.
 
※ 코끼리 : 코가 긴 코길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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