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형의 활처럼 휘어진 긴 꽃대에 대롱대롱 핀 작은 꽃... 마치 세뱃돈을 넣는 비단 주머니를 닮고 꽂가루가 황금색인 것에서 유래한 금낭화錦囊花다. 또는 비단으로 수놓은 여인들의 복주머니를 달마 며느리주머니로도 불린다. 산지나 계곡에서 자라며 옛날에는 돌담 근처에 심어 어린 순은 나물로, 뿌리와 줄기는 약재로 활용했다. 영어로는 꽃 모양과 색깔이 피 흘리는 사람의 심장을 닮았다는 ‘bleeding heart’다.

왕릉에서 출토된 금귀고리를 닮은 금낭화는 야생화지만 관상용으로도 그 어느 꽃보다 예쁘다. 게다가 차츰 말괄량이 삐삐의 양갈래 머리처럼 끝이 올라가는 모양도 특이하다. 그야말로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주머니 속의 송곳, 낭중지추囊中之錐에 어울리는 금낭화인 것이다.
「전국시대에 조나라는 진나라가 쳐들어오자 초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평원군을 파견하기로 한다. 평원군은 그의 식객 중에서 동행할 사람을 뽑으려 했다. 그때 모수가 나선다. 평원군은 “선비의 처세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그 끝이 보이기 마련인데, 나는 아직 자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네. 자네는 무슨 능력이 있는가?”라 물었다. 이에 모수는 자신이 일찍이 주머니에 있었다면 끝만 아니라 자루까지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평원군을 따라 나선 모수는 초나라와의 협상에 성공했고 진나라를 물리쳤다.」
낭중지추의 유래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사마의부터 동진이 멸망할 때까지의 진나라 역사를 기록한 “진서”(648년)에서 유래한 ‘군계일학群鷄一鶴’도 그 의미가 같다.
「진나라에 세상을 등지고 죽림에 모여 노장사상을 논하던 혜강, 산도, 왕융 등 일곱 명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났던 혜강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그에게는 어린 아들 혜소가 있었다. 후에 산도가 진무제에게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묻지 않는다고 했으니 혜소를 중용하십시오.”라며 혜소를 추천했다. 혜소가 낙양에 입성하던 날, 누군가 왕융에게 말했다. “구름처럼 많은 인파 속에서 혜소의 기품은 마치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 학 같았습니다.”」
정사 “삼국지”의 ‘촉서 마량전’에 기록된 ‘백미白眉’도 같은 부류의 여럿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킨다.
「유비가 형주를 다스릴 당시 마씨 오형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 ‘백미’라는 별명을 가진 마량의 재주가 뛰어났다. 유비는 그에게 중책을 맡겼고, 그는 남쪽 변방의 오랑캐 무리를 평정했다. 한편 마량의 동생 마속은 제갈량의 신임을 받았지만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패했다. 이에 제갈량은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베었는데 이것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유래다.」
재능이나 능력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낭중지추와는 달리 그로 인해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도 있다. 성격이 곧거나 어떤 일에 두각을 나타내면 시기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그 차이는 꽃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금낭화의 겸손과 그를 알아보는 세상에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모난 돌이 아니라 모난 돌을 시기질투하는 잔 돌이다. "사랑의 기술"(1956년)을 쓴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거지가 시기하는 사람은 백만장자가 아니다. 그건 자기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거지다.”라고 말한다. 나는 누구를 시기질투하고 있는 걸까? 금낭화에서 비롯된 자아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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