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일의 항구도시, 부산釜山... 부산은 가마솥(부釜)을 닮은 산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산들을 경계로 350여만 명의 시민들이 여러 권역으로 나뉘어 생활한다. 부산의 이미지는 자갈치 시장, 국제영화제, 롯데야구단과 부산 갈매기(1982년)로 이어진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부산 나들이에서 찾은 송도케이블카, 오륙도스카이워크, 광안대교, 태종대, 동백섬, 감천문화마을... 출장으로 스치듯 왔던 예전과는 다르다. 특히 동백섬의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바라본 해운대의 스카이라인과 광안대교 야경은 해외 어느 관광지 못지않은 장관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제주의 해안선과는 달리 이국적이다.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70 km 해파랑길의 시작인 오륙도 바닷길을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걷는다. 그 곳에서 잎이 커다란 아이비와 털머위를 만났다. 잎이 반짝반짝 윤기 나는 광나무는 부산이 따뜻한 남쪽나라인 것을 새삼 알게 한다. 제주 들판에서 만났던 개민들레도 많다. 산철쭉이 대부분인 서울의 길가나 공원과 달리 영산홍인 것도 이색적이다. 그 중에서도 반가웠던 것은 동백섬에서 만난 꽃봉오리를 머금은 아왜나무였다.

아왜나무는 일본의 아와부끼나무가 제주에서 아왜낭으로 불린 것에서 유래한다. '아와'는 거품이란 뜻으로 ‘아와부끼awabuki’는 잎이 두껍고 줄기에 수분이 많아 나무에 불이 붙으면 뽀글뽀글 ‘거품을 내는 나무’라는 뜻이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대표적인 방화수인 아왜나무는 잎의 자연발화온도가 745도로 14종의 난대림 나무들 중에서 가장 높다. 동백나무, 가막살나무, 가시나무 등도 방화수로 쓰인다. 은행나무나 굴참나무도 코르크층이 두꺼워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콩알처럼 작은 아왜나무의 빨간 열매는 붉은 산호처럼 아름다워 일본에서는 산호수를 뜻하는 ‘산고쥬’로도 부른다.
추운 겨울이나 건조한 봄에 많이 발생하는 산불은 산나물 채취와 입산철을 맞아 80% 이상이 실화로 발생한다. 특히 동해안 산불은 순식간에 크게 번진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양간지풍’과 양양과 강릉 사이의 ‘양강지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고온건조하게 되고 풍속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해안은 송진이 많은 소나무가 많고 그 아래에는 소나무의 타감작용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없어 통풍이 잘 되는 것도 산불이 크게 번지는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아왜나무의 어감은 별로다. 불을 차단하는 방화수와 달리, 연인 사이의 ‘아, 왜?’는 권태라는 ‘불씨’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씨가 ‘또, 왜?’라는 짜증지풍을 만나면 삽시간에 마음속 송진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 나간다. 언어 순화가 필요한 식물은 아왜나무일지도 모른다. 어원도 아와부끼라는 일본어다. 갈등의 소화에 필요한 대화의 기술은 불만의 ‘아, 왜’가 아닌 공감의 ‘아, 그래’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그래나무는...
※ 방화수 : 화재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에 심는 화재에 강한 나무
※ 아왜낭 : 제주 고유의 방언이라고도 한다.
※ 조선시대에는 궁궐 마당이나 귀퉁이에 물을 커다란 솥 '드무'에 채워서 방화수로 사용했다. 불귀신이 드무에 비친 자기 모습에 놀라 도망칠 거라는 미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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