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계절 풀꽃나무_3

21. 앙스트 블뤼테, 대나무꽃

flower-hong 2025. 5. 20. 16:45

간밤에 내린 비... 그런데 인문관 옆의 반듯했던 대나무가 비에 젖은 도롱이를 뒤집어 쓴 것처럼 덥수룩하다. 혹시? 아! 백년에 한 번 핀다는 신비의 꽃, ‘대나무꽃’이 피었다. 실제로 개화기관이 퇴화되어 꽃이 잘 피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만나기 어려워 대나무에 꽃이 피면 길조로 여겼으며 신문에도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대나무꽃


대나무 꽃이 피는 원인은 3~4년, 20~25년, 30년, 60년 또는 120년마다 핀다는 주기설과, 한 곳에 오랫동안 번식하면 특정 영양분이 소진되어 더 이상 번식이 어려울 때 꽃을 피운다는 영양설이 있다. 혹은 겨울에 이상 저온으로 땅속줄기와 뿌리가 얼기 전에 개화한다는 기후설도 있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로 번식하기 때문에 대나무 빽빽하게 들어선 숲도 몇 개의 줄기에서 자란 것으로 하나가 꽃 피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죽고 만다. 이런 현상을 ‘개화병開花病’이라 한다. ‘꽃이 병’인 셈이다. 대나무도 벼과의 초본식물로 벼처럼 꽃을 피우고 죽는 것이다. 이처럼 생존의 끝에 사력을 다해 번식하는 현상을 독일어로 ‘불안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라 한다. 뿌리에 남아있던 눈이 다시 자라 원상태로 회복되려면 10여 년이 걸린다. 얼마 후, 대나무밭은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변하고 말았다.
 

대나무


고산 윤선도는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의 덕을 예찬한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를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라고 했지만, 풀로 분류된다. 나무와 풀은 어떻게 구분할까? 첫째는 단단한 목질부와 형성층에 의한 부피 생장이다. 대나무는 형성층이 없지만 첫 해에 자란 줄기가 나무처럼 차츰 단단해진다.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올라온 죽순은 금세 자란다. 특히 비온 뒤에 죽순이 수 십 cm씩 쑥쑥 자라는 것을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 년 동안 땅속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나간 후에 때가 되면 한꺼번에 올라오는 것이다.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의 막내인 대나무는 죽통밥, 죽엽청주, 죽염 등에 쓰였던 서민의 군자였다. 대나무에는 죽세공품을 만드는 두꺼운 왕대, 죽순을 먹는 죽순대(맹종죽), 낭창낭창하여 낚싯대로 쓰이며 솜 같은 하얀 무늬가 있는 솜대, 갈색 껍질로 쌓여 있으며 화살대에 적합한 이대, 조리를 만드는 조릿대 그리고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까만 오죽烏竹과 노란 황금죽 등이 있다.

대나무는 등잔, 가스등, 양초 대신에 세상을 환히 밝힌 나무였다. 1879년 에디슨이 대나무를 태운 탄소 필라멘트로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이다. 역사학자 에밀 루트비히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인류에게 건넨 불 이후, 백열전구는 두 번째 불이었다. 백열전구 발명에 1,200번 이상의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던 에디슨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그는 최적의 필라멘트를 찾기 위해 백금, 낚싯줄, 머리카락, 종이, 무명실 등의 온갖 재료를 테스트했다. 이후 탄소 필라멘트가 적합하다는 소식에 그는 세계 각지의 대나무를 찾아 나선 끝에 일본 교토에서 나는 대나무를 탄화시킨 필라멘트로 인류의 문명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의 소나무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웬일일까? 보통 솔방울은 5~10개씩 뭉쳐나는데 100여 개의 솔방울이 바나나처럼 뭉친 ‘다닥다닥 소나무’였다. 수꽃이 암꽃으로 성전환되면서 수정된 솔방울들이 다닥다닥 붙은 것이다. 3월에도 목련꽃이 지고, 백년에 한 번 핀다는 대나무꽃에 다닥다닥 소나무까지... 해를 더할수록 지구의 위기를 경고하는 그들이다.
 
※ 대나무 : 바나나와 야자나무의 줄기도 잎이 겹쳐 쌓인 풀이다. 
※ 형성층 : 식물의 관다발조직에서 물관부와 체관부 사이에 있으며 세포분열에 의해 부피생장이 이루어진다.
※ 반포지효 : 돌이킬 ‘반反’, 먹일 ‘포哺’의 효孝로 까마귀는 부화하면 60일 동안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먹고 자란 후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리는 것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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