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나뒹구는 은행 열매... 행에 밟을까 그 사이를 까치발로 조심조심 걷는다. 은행銀杏은 은빛 가루가 덮인 살구杏라는 뜻이다. 영어로도 silver apricot 혹은 ginkgo다. 한자어는 잎이 오리발을 닮아서 압각수鴨脚樹 또는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 대에 열매가 열린다는 공손수公孫樹다. 공손수에는 고구려 17대 소수림왕(?~384)의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한다.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나라는 고구려다. 313년 15대 미천왕(?~331)은 중국이 5호 16국의 혼란기로 접어드는 혼란한 국제 정세를 틈타 낙랑군을 몰아내고 계속해서 16대 고국원왕(?~371)은 요동으로의 진출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전연과 대립한다. 342년 고구려를 공격한 전연은 미천왕의 시신을 탈취하고 왕비를 비롯한 5만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아 돌아갔다.
고국원왕은 요동 진출이 좌절되자 남방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중앙집권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활발한 영토 확장을 추진하고 있었던 백제 13대 근초고왕(324~375)을 마주친다. 371년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고, 백제는 한강 이북을 차지한다.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는 동진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일본에 칠지도를 하사했으며, 요서에 진출하는 등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17대 소수림왕은 절치부심하며 고국원왕의 복수를 다짐했으나 힘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은행나무를 심는 것을 보았다. “당신 생전에 열매를 먹지 못할 텐데 왜 나무를 심고 있소?” 그러자 노인이 “그렇더라도 손자가 먹게 되면 내 사랑이 그 마음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에 깨달은 소수림왕은 때를 기다리며 나라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 전진의 승려 순도를 맞아들여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설립해 유교이념을 확대해 나갔다. 또한 국가 통치의 기본법인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에 나섰다.
한편 백제는 근초고왕과 근구수왕(?~384)을 이은 15대 침류왕(?~385)이 2년 만에 승하하자 동생인 16대 진사왕(?~392)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고구려도 백제도 예전의 고구려와 백제가 아니었다. 391년 18세에 왕위에 오른 19대 광개토대왕(374~412)은 백제의 천혜 요새인 관미성을 점령한다. 진사왕은 암투 끝에 죽고 침류왕의 아들이 17대 아신왕(?~405)으로 즉위했다. 그는 기개가 호방하고, 사냥과 말 타기를 좋아했던 비범한 인물이었다.

393년 아신왕은 관미성을 공격했으나 상대는 광개토대왕이었다. 396년 광개토대왕은 한강 수로를 이용한 기습 상륙 작전으로 아차산성을 점령하고 한성을 포위했다. 아신왕은 영원한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선언한 후에도 가야와 왜국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한다. 광개토대왕은 거란과 후연을 공격하며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의 영토 확장은 실로 눈부셨다. 427년 20대 장수왕(394~491)은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다. 433년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위기를 느낀 백제 20대 비유왕(?~455)은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는다.

고구려와의 긴장 상황에서 즉위한 백제 21대 개로왕(415~475)은 고구려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북위에 협공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바둑을 미끼로 접근한 첩자인 승려 도림(?~?)의 계략에 빠진 개로왕은 풍납토성 수축과 궁궐 수리 등 무리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민심을 잃고 말았다. 475년 한성은 장수왕에 의해 함락되었고 개로왕은 아차산에서 피살되었다. 공손수 은행나무에서 와신상담한 소수림왕의 고구려는 100여 년 만에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가을이면 책갈피로 꽂았던 추억의 노란 은행잎과는 달리 악취 나는 열매는 길가의 천덕꾸러기다. 과육 질에 함유된 빌로볼과 은행산에 의한 냄새다. 공룡과 함께 중생대 쥐라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은행나무는 수십 종이 있었으나 지금은 은행나무문에서 유일하게 남은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식물로 주로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은행나무 단풍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이유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생물이다. 열매 냄새가 고약해서 동물들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식할까? 대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심는다. 인류가 멸종한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나무인 것이다.
※ 도미설화
개로왕은 도미의 아내가 아름답고 행실이 바르다는 말에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꾀면 넘어갈 것이라며 왕의 옷을 입힌 신하를 도미의 집에 보낸다. 가짜 왕은 도미와 내기에 이겼다며 수청을 요구하자 도미 부인은 밤에 몸종을 대신 들인다. 분노한 개로왕은 도미를 장님으로 만들어 강물에 띄워 버렸다. 그리고 강제로 범하려 하자, 월경을 핑계로 미룬 후 도망쳐 강가에 이르렀다. 그때 어디선가 떠내려 온 조각배를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도미를 만났다. 이들은 배를 타고 고구려로 가서 일생을 마쳤다.
※ 고구려 왕 이름
고구려왕의 왕호는 장지명을 많이 사용한다. 소수림왕小獸林王은 소수림이라는 숲에, 동천왕東川王, 서천왕西川王, 미천왕美川王은 동쪽 냇가, 서쪽 냇가, 아름다운 냇가에 묻힌 왕이라는 뜻이다. 장지명을 왕호로 사용한 것은 민중왕, 모본왕처럼 고구려 초기뿐만 아니라, 고국천왕~고국양왕 시기와 평양 천도 후에는 안원왕, 안장왕, 평원왕에도 나타난다. 광개토대왕의 시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도 장지명인 ‘국강상’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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