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풀꽃나무에서 만난 한국사_완료

35. 뭣이 중헌디? - 가문비나무

flower-hong 2024. 12. 26. 11:17

피라미드 모양의 당당한 수형을 가진 가문비나무는 전나무와 비슷하지만, 구과와 잎이 아래로 처져 있다. 나무껍질이 검다는 흑피목黑皮木에서 유래한 가문비나무는 고산지대에 자생하며 관상수로 심는 것은 대개 독일가문비나무다. 재질이 연한 목재는 펄프의 원료로 쓰인다.
 

독일가문비나무

 
1659년 현종(1641~1674)이 조선 제18대 왕으로 즉위한다. 북벌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효종,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던 숙종, 그 사이에 끼어 있어 존재감이 덜한 현종이 맞닥뜨린 것은 예송논쟁이었다.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복에서 비롯된 예송논쟁은 왕권과 신권, 서인과 인조 이후에 성장한 남인의 권력 투쟁이었다.
 
두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신분제에 대한 저항이 커져갔다. 조선은 중화의 나라 명이 멸망하자 소중화를 자처하며 성리학적 질서를 세우기 위해 예학과 족보학을 강화했다. 또한 왕권 실추로 인해 임금도 그저 가장 높은 사대부의 하나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효종의 상에 대한 예송논쟁이 불 붙은 것이다. 주자가례에서 정한 장자의 상은 3년, 차자 이하는 1년간 상복을 입는 것이었다.
 
서인은 자의대비의 1년 상을 주장했다. 그러나 남인은 사대부와는 달리 누구든 왕이 된 자가 적통이며, 맏이가 죽으면 동생이 장자라는 논리로 3년 상을 주장했다. 서인은 효종이 차남, 남인은 장남이라는 것이다. 송시열은 경국대전에 장남과 차남 모두 1년 상인 것을 근거로 1년 상을 주장했다. 내심으로는 효종을 차남으로 여기면서도 장남처럼 생색낸 것이다. 지금이라면 3년이든 1년이든 뭣이 중헌디였지만 당시 예송논쟁은 성리학적 사회 건설을 위한 서인(율곡학파)과 남인(퇴계학파)의 이념 논쟁으로 붕당 정치를 대표하는 사건이었다. 즉위 초 현종은 집권당인 서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지구의 평균 기온이 1℃ 정도 낮아지면서 닥친 소빙기로 경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에 걸쳐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경신대기근이 일어났다. 한여름에도 서리와 눈이 내리고 메뚜기와 병충해가 창궐했다. 이로 인한 식량 부족과 전염병으로 인구의 1/4인 백만 여명의 사망한 대사건으로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울 내외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다. 부모와 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젖을 빨다가 따라 죽기도 한다.” 고관대작들도 굶주리다 죽어 나갔으며 예송논쟁을 휴전할 정도였다. 특히 제주도의 인구는 무려 40%나 감소했다. 아이들을 버리고 인육을 먹는 일이 생겨났다. 임진왜란보다도 더 혹독한 시기였다.
 
경신대기근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하나는 온돌의 보급으로 땔감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림이 급속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소나무를 보호하는 송금사목이 제정되었으나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산은 1960년대 펼친 대대적인 산림녹화의 결과였다. 북한은 대부분 민둥산으로 남아있다.

1674년 어머니 인선왕후가 생을 마감했으나 자의대비가 여전히 살아있었다. 상복 문제로 2차 예송 논쟁이 재현됐다. 경국대전에 장남과 차남의 상은 모두 1년 상으로 같았으나 맏며느리의 상은 1년, 그 외는 9개월이었다. 서인은 9개월 상을 주장한다. 그러나 즉위 초와는 달리 왕권의 틀을 갖춘 현종은 1년 상을 결정한다. 송시열과 서인의 위기였지만 현종은 노련한 정치력으로 남인과 서인의 균형을 맞추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경신대기근이 발생했던 1700년대 전후로 약 70여 년간 알프스 지역의 가문비나무는 혹독한 추위로 인해 생장이 느려지면서 촘촘하고 밀도가 균일하게 자랐다. 현악기의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은 이러한 가문비나무의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였다. 이는 ‘불안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뜻으로 죽음을 감지한 대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거나, 소나무가 많은 솔방울을 맺는 것처럼 생존의 끝에 사력을 다해 번식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나무 꽃


현종은 전대미문의 혹독한 경신대기근으로 앙스트블뤼테의 순간을 맞닥뜨린 임금이었다. 그러나 예송논쟁의 스트레스와 체력 저하로 인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인선왕후의 빈소에서 갑자기 승하하고 말았다. 현종은 후궁을 두지 못한 유일한 왕이었다. 명성왕후는 성정이 강하고 질투가 심하여 다른 여인을 가까이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들은 숙종뿐이었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세자빈-왕후-왕대비의 코스를 밟은 명성왕후는 조정의 실세였다. 그러나 그녀는 천연두에 걸린 숙종의 쾌유를 위해 무당의 말에 따라 혹독한 겨울에 삿갓을 쓰고 홑치마만 입은 채 물벼락을 맞는 등 지성을 드리다가 지독한 독감에 걸려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