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행에서 만난 풀꽃나무

02. 제주의 문주란

flower-hong 2024. 7. 27. 13:02

어느 새... 18개월 전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아들에게는 가혹하지만 오늘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오고 말았다. 할아버지에게 신고하러 오른 제주행 비행기... 착륙 직전에 크게 흔들리며 급상승한다. 우는 아이들, 기도하는 아주머니, 손을 꼭 맞잡은 연인... 떨리는 스튜어디스 기내 방송, "잠시 후,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난기류로 인해 관제탑의 지시로 상승했습니다. 곧 착륙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향에서 맞이한 아침...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한림공원 쪽으로 산책을 나선다. 예덕나무, 동백나무, 담팔수, 멀구슬나무, 까마귀쪽나무... 그리고 워싱턴야자수 사이에 자리 잡은 문주란文珠蘭 꽃이 지기 직전이다. 문주란은 '아름다운 구슬처럼 생긴 난초'라는 뜻이지만 수선화과로 알뿌리 식물이다. 문주란은 최저 영하 3도 이상에서만 자생한다. 
 

예덕나무, 담팔수


줄기는 50 cm 정도로 곧게 서며 여름에 굵은 줄기가 뻗어 나와 하얀 꽃을 피운다. 공 모양의 삭과는 익으면 바닷물에 뜬다. 아프리카 원산으로 씨앗이 해류에 밀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는 일본 유구국의 배가 제주에 난파되면서 퍼졌다 하여 왜반초로도 불린다. 수선화, 석산, 상사화 등과는 사촌지간으로 피부병과 노화 방지용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문주란 꽃


제주 구좌읍 하도리의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토끼섬의 원래 이름은 문주란의 난蘭에서 유래한 난도였으나 1927년 토끼를 방사하면서 토끼섬이 되었다. 토끼섬의 문주란은 한때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 위기에 처했었으나 주민들의 노력으로 7~8월이 되면 토끼섬 전체가 하얗게 물들 정도로 빽빽하게 자란다. 또한 번식력이 좋아 지금은 제주의 곳곳에서 관상용 문주란을 만날 수 있다. 
 

문주란 열매


금릉해수욕장 입구에서 유턴, 바닷가를 끼고 협재해수욕장으로 걷는다. 협재해수욕장을 제주도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비양도의 유려한 곡선이 바다와 하늘의 경계에 떠 있다. 고려사(1451년)와 고려사절요(1452년)는 1002년과 1007년에 제주도 서남쪽의 바닷속 화산 분출로 생긴 화산을 상서로운 산, 서산瑞山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한다. 이를 토대로 비양도는 천년의 섬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수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천년의 섬 비양도를 배경으로 문주란을 사진에 담는다. 사구에는 순비기나무, 갯무, 애기달맞이꽃, 거지덩굴 등이 자리한다. 이들은 모래가 바람에 쓸려 가는 것을 막는 사구 지킴이다. 반면에 그 안쪽 소나무 숲 사이로는 모래 위에 흙과 시멘트로 덮은 새로운 길들이 생겨난다. 
 

비양도와 문주란


그런데 문주란하면 가수 문주란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골에서 상경한 동숙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문주란은 70~80년대를 풍미한 가수다. 혹시 아는 노래가 있을까하여 히트곡을 들어보지만 생소하다. 내가 아는 그녀의 노래는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단 하나다.

처음에 사랑할 때 그이는 / 씩씩한 남자였죠 / 밤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마 / 미더운 약속을 하더니 / 이제는 달라졌어 그이는 / 나 보고 다해달래 / 애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 / 당신 정말 미워 죽겠네 / 남자는 여자를 / 정말로 귀찮게 하네
 
제주에 가면 늘 문주란을 만났지만 만개한 꽃은 처음이다. 산책 후 귀경을 위해 아들과 집을 나선다. 몸이 불편하셔서 마당으로 내려오지 못하시고 2층 난간에서 손을 흔드시는 아버지, 어머니... 45년 전에도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홀로 제주시로 유학 떠난 아들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 첫차로 제주시를 향할 때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드셨다. 몇 번을 더 뵐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