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6

2-17. 붓뚜껍 신화 - 목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어도 막상 만나면 ‘아! 이 꽃이?’ 다시 바라보는 꽃들이 있다. 목화가 그러했다. 아! 이 꽃이 문익점이 붓 뚜껑에 씨앗을 숨겨서 들여 왔다는 목화인가? 그 따스함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나무에 핀 꽃, 목화木花’라 했을까?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온 시기는 원의 고려 간섭기가 끝나가던 원·명교체기였다. 1297년 모친 제국대장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원에서 돌아온 세자는 충렬왕의 후궁들과 측근들을 모조리 죽인 후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26대 충선왕(1275~1325)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개혁하려 했지만 권문세족의 반발과 아내인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로 8개월 만에 폐위되어 원으로 소환된다. 1307년 충렬왕이 죽자 다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

2. 한국사 2024.10.19

3-04. 채식주의자

삐리리~ 아버지 전화다. 41년생, 여든 넷이신 아버지 전화는 늘 나를 긴장시킨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지난 9월, 벌초하러 갔을 때는 제주시에서 형을 만나고 천천히 간다고 전화했는데 넘어져서 119를 불렀다는 말에 부랴부랴 서둘러 내려 가기도 했다. "예~ 아버지. 무사마씸?" "어디, 학교가?" "예." "물어볼 말이 이신디, 채식주의자가 머꼬?" 예전에 천 권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기에 각 잡고 독서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만시간의 법칙,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장길산, 임꺽정, 토지, 혼불, 개미, 1Q84, 너와 나의 1cm... 일 년에 백 권 이상 읽었던 그때였다. 그 중에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공계 출신의 내게는..

3. 일상 2024.10.17

2-16. 충충충... - 피뿌리풀

몽골에서 뿌리가 피처럼 붉다는 피뿌리풀을 만났다. 독성이 있어 양이나 말이 먹지 않기 때문에 몽골에서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간혹 보이는 멸종위기종이다. 한반도를 건너 뛴 몽골과 제주의 피뿌리풀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1235년 고려를 공격한 몽골은 4년간 전국을 휩쓴 후 1239년에 고종의 몽골 입조를 조건으로 철수하였다. 1251년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완성했다. 원래 대장경은 993년과 1010년에 현종(992~1031)이 불심으로 거란을 물리치고자 제작한 초조대장경이었다. 그러나 몽골군에 의해 소실되자 최우 무신정권은 민심을 모으고 대몽항쟁을 이어 가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다시 새긴 것이다. 대장경판에 쓰인 나무는 재질이 균일하고 적당히 물러서 글자를 새기는데 안성맞춤인 산벚나..

2. 한국사 2024.10.13

3-03. 정교수

몇 분이 정교수로 승진 기념으로 함께 식사 후 다솜채에서 담소를 나눈다. 누군가 묻는다. "승진한 기분이 어떠세요." "글쎄~ 올 게 온 느낌? 그다지 큰 감흥은 없네요." "그래도 저희는 정년 보장이 부러워요." 65세 정년 보장... 누군가에게는 올 게 왔지만 기다리는 이에게는 은근 부러운 일이다. 내게는 가위 눌리는 세 가지의 악몽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전에 근무하던 연구원으로 복직하는 꿈이다. 전입신고, 인터넷 ID 발급... 옛 동료들과의 환영 회식 자리를 빠져 나와 변호사 친구에게 전화한다. 발령 불복 소송 청구 유효 기간이 지났다는 말에 절망하며 잠을 깬다. 그리고 재수생으로 돌아가는 꿈이다. 공릉동, 독서실과 노량진 대성학원, 행당동 하숙집 고개를 오가던 어두운 시간들의 잔상... 최악..

3. 일상 2024.10.12

2-15. 권력은 칼 끝에서 - 말채나무

공원 곳곳의 흰말채나무... 겨울이면 특히 눈에 띄는 붉은 가지를 말채찍으로 사용했다는 작은키나무다. '흰'은 열매가 흰색이어서 붙은 접두사다. 우레탄처럼 낭창낭창한 가지가 말채찍에 안성맞춤이다. 18대 의종(1127~1173)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으로 실추된 왕권 강화와 신변 보호를 위해 무신들로 친위군을 조직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호위병일 뿐이었다. 문신이었던 윤관 장군의 여진 정벌 후 무신에 대한 멸시 풍조는 의종 대에 이르러 더욱 심해졌다. 기마술과 격구에 능한 의종은 성밖을 유람하며 문신들과 놀기를 즐겼다. 호위를 맡은 무신들의 피로와 불만이 쌓이면서 이고, 이의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1170년 의종은 유람지인 보현원으로 향하던 중 무신들을 위해 상품을 걸고 오병수박..

2. 한국사 2024.10.07

3-02. 3대 가곡

화학전지와 전기분해 수업. 볼타전지와 리튬이온전지, 바닷물의 전기분해는 그리고 알루미늄 금속은 보크사이트 광석을 용융시킨 후 전기분해로... 불현듯 초등학교 때 사회과부도에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본뜨던 일이 떠오른다. 그 중 하나가 보크사이트 산지였던가? 그런데 학생들은 보크사이트를 모른다. 아! 진짜? 내친 김에 뜬금없이 물었다. "혹시 우리나라 3대 가곡은~~" "가곡이 머예요?" "헉..." 가곡歌曲은 시에 곡을 붙인 클래식 음악으로 정확하게는 예술가곡이다. 프랑스에서는 가곡을 멜로디, 대중적인 곡을 샹송이라 부른다. 이탈리아는 로망스와 칸초네로 나눈다. 우리나라 가곡은 시나 시조에 찬송가 비슷한 선율의 반주를 붙인 노래로 1920년대의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나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이 효시..

3. 일상 2024.10.03

1-05. 남한산성의 해바라기

9월 중순... 햇살은 여전히 한여름의 열기를 붙잡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남한산성에서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전통 무술을 공연 중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명에 의해 편찬된 무술 교본으로 2017년 북한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도보는 그림과 해설, 통지는 종합 서적을 뜻한다. 짧은 기합과 번뜩이는 칼날에 사선으로 잘려 나가는 대나무... 역시 직관은 다르다. 그 옆에는 해바라기sunflower가 담장에 기대어 하늘 향해 곧게 뻗었다. 그런데 굵은 가지 끝 뿐만 아니라 곁 가지에도 꽃이 피었다. 원래 그런가? 해바라기는 수많은 작은 꽃들로 이루어진 두상화서다. 콜럼버스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처음 유럽에 가져왔을 당시 압도적인 자태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해바라기는 고흐와 고갱..

1. 풀꽃나무 2024.10.02

2-14. K-culture의 시작 - 닥나무

얼룩말처럼 껍질에 줄무늬가 선명한 나무들... 양버즘나무 같은 동그란 열매가 차츰 딸기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꾸지나무다. 꾸지나무는 한지를 만든다는 구지構紙에서 유래한다. 한지하면 닥나무지만 꾸지나무도 그에 못지않게 많이 쓰인 나무였다. 수 차례 거란을 물리친 고려는 덕종 대부터 여진, 탐라, 일본의 호족들로부터 조공을 받으면서 송나라, 거란과 대등한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군림한다. 이복형 덕종과 정종을 이어 11대 문종(1019~1083)이 즉위한다. 이들 셋은 고려-거란 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현종을 유일하게 받아준 공주 귀족 김은부의 딸들이 낳은 왕이었다. 문종은 최충과 함께 협상과 조정을 통한 문치 정책을 펴 나갔다. 해동공자라는 최충은 구재학당이라는 문헌공도를 설립해 유학 보급에 힘썼으며, 문..

2. 한국사 2024.09.28

2-13. 고려-거란 전쟁 - 굴참나무

신림동의 굴참나무...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보호수다. 지금의 굴참나무는 약 250살 정도의 후계목으로 추정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첫번 째 과제는 정치적 안정이었다. 그는 발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의 유민을 받아들였다. 또한 지방 호족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중앙과 지방이 연결되면서 고려는 차츰 단일민족 의식이 싹터 나갔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지방 호족들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렸다. 태조 왕건이 승하하자 장남인 2대 혜종(912~945)이 즉위한다. 나주 호족 출신으로 버들잎 ..

2. 한국사 2024.09.26

3-01. 벌초

음력 8월 1일... 제주에서는 비공식 벌초일이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는 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하는 벌초 방학도 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 "올해는 사람 구해시난 20만 원만 보냉 오지 말라" 몇 년 전부터 남들처럼 사람을 쓰자고 했다. 아버지, 형, 나, 친척 둘이 하기엔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100평 남짓한 공동묘지와 외떨어진 무덤 하나. 중산간에 위치한 공동묘지는 할만 하지만, 높이 2m, 폭 1.5 m 정도의 산담으로 둘러싸인 무덤은 쉽지 않았다. 돌 틈새로 요리조리 뻗어나간 칡덩굴, 들장미, 망개나무 등이 엉키고 설켜 있다. 낫으로 덩굴을 잡아 당길 때 일부 산담이 무너진 적도 있었다. 어느 해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

3. 일상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