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상

3-03. 정교수

flower-hong 2024. 10. 12. 07:31

몇 분이 정교수로 승진 기념으로 함께 식사 후 다솜채에서 담소를 나눈다. 누군가 묻는다.

"승진한 기분이 어떠세요."
"글쎄~ 올 게 온 느낌? 그다지 큰 감흥은 없네요."
"그래도 저희는 정년 보장이 부러워요."

65세 정년 보장... 누군가에게는 올 게 왔지만 기다리는 이에게는 은근 부러운 일이다. 내게는 가위 눌리는 세 가지의 악몽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예전에 근무하던 연구원으로 복직하는 꿈이다. 전입신고, 인터넷 ID 발급... 옛 동료들과의 환영 회식 자리를 빠져 나와 변호사 친구에게 전화한다. 발령 불복 소송 청구 유효 기간이 지났다는 말에 절망하며 잠을 깬다. 그리고 재수생으로 돌아가는 꿈이다. 공릉동, 독서실과 노량진 대성학원, 행당동 하숙집 고개를 오가던 어두운 시간들의 잔상...

최악의 악몽은 군에 재입대하는 것이다. 27세 늦깎이로 불침번에 훈련모를 쓰고 거울에 보며 시간이 광속으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는데 다시 돌아와 서버린 불침번 그 자리 그리고 서른에 나이 어린 훈련병들과 다시 섞여 버린 꿈... 형에게 제발 병역필 증명서를 빨리 보내달라고 전화하면서, 이건 꿈이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깬다.
 
"1992년, '박사전문연구요원' 시험에 응시했다. 석사장교 제도가 폐지되면서 신설되어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군복무와 박사학위를 병행할 수 있었다. 2월 28일! 시험은 서울고 14시. 안암동에서 출발 전, 선배가 “차로 데려다 줄까?” 묻는다. 무언가에 홀린듯 “그럴까요?” 얼마 후, 차는 성수대교 위에 껌딱지처럼 들러 붙어 있었다.

“차가 막히네요.”
“원래 토요일은 좀 막혀. 여기만 지나면 괜찮을 꺼야~”
 
13시 40분, 성수대교는 지났으나 차는 게걸음... 심장은 쿵쾅쿵쾅 망치질하고 있었다. 차들은 끝없이 늘어선 김밥 같았다. 그 때, 차 사이로 지나가는 퀵 써비스... 튀어 나갔다.

“아저씨~ 서울고요."   
 
그렇게 도착한 시간은 14시 10분! 입구는 제발 들여 보내달라는 수험생들로 붐볐다. 고속터미널 파업으로 교통 정체가 있었던 것이다. 감독관들이 냉정했다 “지각생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회색빛 하늘이 무너졌다. 500명 선발에 경쟁률은 1.01 : 1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옆건물 구름다리로 3층 고사장으로 올라갔다. 뒷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대각선 방향의 빈 자리 셋, 감독관들은 교탁에서 출결 점검 중이었다. 가장 가까운 빈 자리로 샤샤삭. 수험번호가 달랐다. 두 번의 샤샤삭... 그러나 10분 후,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감독관들에게 출결 확인을 지시한다. 감독관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잠깐 복도로 나가시죠.”
“네.”
“국가고시 부정행위로 할까요? 그냥 가실래요?”
 
그 날, 새벽 이슬과 함께 자취방에서 쓰러졌다. 시험에 떨어지자 ‘이름을 적지 않았다’, ‘밀려 썼다’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고대 화학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왜 악몽일까? 경험했던 익숙한 고통과 불안한 미래에 동일선상에 있는 걸까? 그런데 가끔은 꾸고 싶어도 꾸어지지 않는 꿈이 있다. 어린 시절 발개 벗고 놀던 바닷가... 대학 엠티 고연전... 프랑스 유학 아르카숑의 기억... 그 때 그 시절로 나 돌아갈래! 안 되면 꿈에서라도...


일병 시절 승단 심사 통과 후 소대장과의 약속 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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