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4년 성종(1457~1495)은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어머니 소혜왕후(인수대비)를 위한 창경궁을 지었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린 창경궁은 경복궁 중건 이전까지 정사를 보던 궁궐이었다. 창경궁에 가장 많은 나무는 소나무와 단풍나무다. 소나무는 진시황이 태산에서 제를 지내고 내려올 때 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목공木公의 작위를 받은 것에서 ‘송松’이 되었다. 속리산 정이품송도 법주사로 행차하던 세조가 임금의 가마인 연輦이 걸린다고 하자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품계를 받았다는 소나무다. 계유정난 후 조선은 한명회 천하였다. 그나마 그를 견제하던 예종이 요절하자 한명회는 재기했다. 실록에 실린 36,000여 회의 경연 중 25년 간 세종보다도 많은 9,229회나 참여했던 성종은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