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의 꽃’, 복사꽃... 조선시대에는 ‘꽃구경’하면 첫째가 복사꽃이요, 매화나 살구꽃은 그 다음이었다.
연분홍 복사꽃과 함께 파스텔 톤의 복숭아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류의 과일이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수천 년 만에 한 번 열린다는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인간 세계로 내려와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년), 복사꽃 흩날리는 뜰에서 맺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처럼 복숭아의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사과가 인류의 지성을 일깨웠다면 복숭아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 과일이었다.

복숭아는 껍질에 털이 있는 물렁물렁한 복숭아peach와 겉이 매끈하고 단단한 천도복숭아nectarine가 있다. 예전에는 사주팔자에서 얼굴이 홍조를 띠고 봉숭아처럼 생기면 ‘도화살’이 있다 하여 남자는 바람기, 여자는 음기가 강해 화를 입을 상이었지만 지금은 연예인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이성적인 매력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복사나무는 귀신을 쫓는다 하여 집안에 심지 않았고, 복숭아는 제사상에도 올리지도 않았다. 중국 전설에 활쏘기 명수인 ‘예’가 자신의 재주를 믿고 떠들다가 제자가 휘두른 복사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은데서 유래한다. 반면에 복사꽃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드리는 꽃이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한지로 만든 복사꽃 삼천송이를 올렸다. 복사꽃은 부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효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