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화단의 노란 꽃무리가 시선을 끈다. 모양은 개망초인데, 꽃 색깔이 금불상을 닮았다는 ‘금불초金佛草’다. 여름에 핀 국화라는 ‘하국’ 혹은 금화 같은 ‘금전화’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습지나 물가에서 잘 자란다.
연꽃, 부처꽃, 모감주나무, 보리수나무, 때죽나무, 상사화, 불두화, 흰독말풀 등과는 달리 금불초는 불교와의 특별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금불초일까? 노란 꽃이 불자에게는 광배를 드리운 금불상으로 보인 걸까?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와 함께 도망치면서 병사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불초를 가져갔다고도 한다.
불상은 나무, 청동, 점토, 철 등으로 만든다. 여기에 금을 입하는 ‘개금改金’은 불법을 설파하는 부처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금동불은 밀랍주조법으로 제작한다. 먼저 밀랍으로 세밀하게 빚은 형상에 석고 반죽을 발라 거푸집을 만든다. 석고가 굳으면 밀랍을 녹여낸 후, 용융된 청동을 부어 식히고 거푸집을 떼어 내면 청동불이 된다. 여기에 금과 수은을 섞은 아말감을 칠하여 가열하면 수은이 기화되고 얇은 금박이 입혀진 금동불이 완성되는 것이다.
금동불에서 떠올린 것은 김동리의 단편 소설 “등신불等身佛"(1961년)이었다. 윈래 등신불은 사람 크기로 만들어진 불상이었지만, 실제로는 고승이 입적 후 소금을 채운 항아리에서 3년간 두어 미라가 되면 옻칠과 함께 금을 입혀서 만든 불상을 말한다. 최초의 등신불은 신라 왕자로 중국의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하여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김교각 스님으로 “등신불”은 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에 있던 ‘나’는 정원사에서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만적 스님의 등신불을 보게 된다. 원혜 대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자기를 위해 이복형제 '신'을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신은 가출하고 만적은 스님이 된다. 10년 후, 만적은 문둥이가 된 신을 만나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인간사의 번뇌를 씻기 위해 소신공양을 결심한다. 그가 머리에 향로를 얹고 소신공양하던 날 이적이 일어나면서 새전이 쏟아졌다. 등신불은 그 새전으로 타다 굳어진 만적의 몸에 금을 씌워 만든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원혜 대사는 혈서를 썼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보라고 했는지,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대사는 말이 없었다.」
또 다른 등신불은 최인호의 소설 “길없는길”(2002년)이었다. 조선시대 실존 인물이었던 경허 선사와 그 제자인 만공 선사를 축으로 2천 6백여 년 동안 이어온 한국 불교의 전통을 복원시킨 소설로 작가는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라는 경허 선사의 선시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경허 선사... 고려시대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불교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로 구한말에 이르러 명맥마저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때 한국근대불교의 중흥조로 등장한 스님이 ‘살아있는 등신불’로 불린 경허 선사였다. ‘곧은 나무라야 쓸모 있다’는 말에 ‘삐뚠 것은 삐뚠 대로 곧은 것’이라 답했던 경허 선사...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 삐뚠 것은 삐뚠 대로 곧은 것, 쓸모없음이 쓸모... 금불초에서 파생된 오늘의 화두다.
※ 등신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얼간이, 머저리와 같은 비속어로 쓰였다.
※ 소신공양 : 자신의 몸을 불살라 공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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