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수도권매립지 온실에서 굵은 녹색 화분지주대를 곧게 세워 올린 것 같은 골풀을 만났다. 골풀은 '골짜기에서 나는 풀' 같지만, "산림경제"에 따르면 '고을(골)의 속(안쪽)'을 의미하는 ‘골속’으로 줄기껍질을 벗긴 스티로폼 같은 줄기 속을 지칭한다. 한자어인 등심초燈心草도 골풀의 줄기를 말린 후 기름에 담갔다가 심지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골풀은 여름 한철을 시원하게 보내는 돗자리의 주재료였다. 돗자리도 골풀로 엮어 만든 '자리'(깔개)를 의미했다. 화문석花紋席도 꽃 문양을 넣어서 만든 돗자리를 뜻하지만, 문양과 관계없이 왕골이나 골풀로 짠 자리, 방석, 발 등을 말하기도 한다.
강화 화문석은 강화도 특산품인 왕골로 한 올 한 올 손으로 엮어 꽃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문양을 수놓은 전통 돗자리다. 왕골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혜종은 얼굴에 있는 돗자리 무늬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혜종을 ‘주름살 임금’이라 불렀는데 고려사에는 나주에서 만든 질 좋은 돗자리가 왕의 얼굴에 골을 지게 했다고 해서 '왕골王骨 돗자리'라 불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왕골을 이용한 화문석은 나주와 강화 지역에서 많이 생산됐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나주는 돗자리의 대표적 산지로 떠오르면서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돗자리의 90%이상이 생산했다. 나주가 돗자리 주산지가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진출해 있던 일본인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생활 필수품인 다다미를 일본에서 들여 왔으나 가격이 비싸고 귀했다. 이에 그들은 왕골과 비슷한 골풀을 재배하면서 다다미 공장을 세워 다다미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다미는 볏짚이나 압축 목재 섬유 속을 골풀 돗자리로 감싸 꿰맨 일본의 전통 바닥재로 납작한 돗자리와 달리 두께는 5~6cm이며 기본 규격은 90cm×180cm다.
우리나라 온돌과 달리 지진이 흔한 일본은 쉽게 이동이 가능하고 접을수 있는 다다미 문화가 발전했다. 사람이 몸을 숨긴 다다미 위로 가재도구들이 떨어지면 그 충격을 감소시켜주는 쿠션 기능도 있었다. 다다미는 여름에는 습기를 흡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습기에 취약해 곰팡이나 진드기가 생기기 쉬워 주기적인 환기와 건조가 필요하며, 틈새에 먼지가 끼기 쉽고 액체를 쏟으면 안으로 스며들어 얼룩과 냄새가 나서 5~6년 주기로 표면을 뒤집거나 교체해야 한다.
옛날 농촌에서는 개구리나 물고기를 잡고 난 후에 마땅한 노끈이 없으면 골풀로 꿰메서 꿰미풀로도 불렀다. 특히 줄기 위쪽의 꽃이삭은 뭉쳐있어 물고기가 빠지지 않게 하는 매듭 같은 역할을 한다.
'3. 새로 시작하는 풀꽃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2. 매운 가시의 매자나무와 매발톱나무 (0) | 2026.05.23 |
|---|---|
| 11. 깨달음도 오락가락 보리수 (0) | 2026.05.17 |
| 09. 으아~, 으아리 (0) | 2026.04.27 |
| 08. 갈까말까 철쭉 (0) | 2026.04.26 |
| 07. 돌나물의 광합성 (1) | 2026.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