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천마총의 말다래 - 자작나무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고, 오래된 바이칼 호는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며 부랴트어로 ‘샤먼의 호수’ 혹은 ‘풍요의 호수’라는 뜻이다. 광활한 벌판에 펼쳐진 하얀 자작나무가 차창을 가르며 지나친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나 북유럽의 고위도 지역에서 자라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험한 나무로 신성시된다. 바이칼 호의 샤먼(부르한) 바위도 샤먼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무령왕릉 발굴로 전 국민의 관심 속에 황남대총에 앞서 이루어진 천마총의 발굴에서 4점의 국보와 1만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가 있었다. 천마와 테두리의 덩굴 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 벽화와 같은 양식이었다. 게다가 출出자 모양의 금관도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닮았다. 이는 백제가 일본처럼 신라도 고구려나 북방민족과 활발히 교류한 증거였다.
천마총의 주인은 신라 22대 지증왕(437?~514)으로 추정된다. 그는 순장을 금하고 우경법으로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국호를 ‘왕의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을 두루 망라한다’는 신라新羅로 정하고 왕의 칭호를 사용하는 등 신라의 전성기를 향한 초석을 다졌다. “삼국유사”에는 지증왕의 일화가 전한다.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자 5촌(~45 cm)으로 짝을 구하기 어려웠다. 사신을 삼도로 보냈는데, 사신이 모량부의 동로수라는 나무 밑에 이르러 두 마리의 개가 북만 한 똥을 두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 똥이 키가 7척 5촌(~220 cm)인 모량부 상공의 딸이 빨래를 하다 숲속에서 일을 본 것이라 말했다. 왕은 그녀를 궁으로 불러 황후로 삼았다.”
512년 신라는 고구려와 왜의 교역 항로를 차단하고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독도는 우리 땅(1982년)’의 이사부 장군을 앞세워 우산국을 정벌했다. "삼국사기"에는 그 내용이 전한다. 이사부가 이르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워 힘으로 복속시키기는 어렵지만 꾀로써 복속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에 이르러,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죽이겠다.” 하니, 그들이 두려워하며 곧 항복하였다. 신라 판 트로이 전쟁이었다.

23대 법흥왕(?~540)은 고대 국가 체제를 완비하였다. 그는 개혁을 추진하며 불교를 수용하려 했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토착 종교 세력이 강한 신라는 이사부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법흥왕은 흥륜사 건립이 지체된 책임을 물어 이차돈을 처형했다. 이때 그의 목에서 흰 젖이 솟구치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기적으로 불교가 공인되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가 건립되었다. 법흥왕은 말년에 승려가 되었다. 법흥은 불교를 흥하게 한 군주라는 시호다.

551년 백제 26대 성왕은 안장왕 사후 고구려가 혼란한 틈을 타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어 한강 유역을 되찾았다. 성왕은 온 세계를 바른 법칙으로 이끈다는 인도 신화의 전륜성왕을 줄인 것으로 그도 불교의 이상 사회 건설을 꿈꾸었다. 그러나 신라 24대 진흥왕(526~576)은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북진을 멈춘다. 성왕은 많은 전사자로 인한 군사 부족으로 철수한다. 이에 진흥왕은 한강 이남을 차지하면서 나·제동맹은 파기되었다. 성왕에는 배신이었지만 진흥왕에게는 국익이었다.
그럼에도 성왕은 왜국에 군대를 요청하고 딸을 진흥왕에게 시집보내 방심케 한 후 태자에게 관산성(충북 옥천)을 점령케 하였다. 성왕은 태자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소수의 부하만을 이끌고 나섰다가 신라의 매복에 죽고, 백제는 관산성 전투에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에게 패하고 말았다. 백제의 부활을 꿈꾸던 성왕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진흥왕은 불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립했다. 무엇보다 그는 화랑을 체계적으로 육성함으로서 삼국통일과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천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었다. 진흥왕도 말년에 삭발하여 흥륜사 주지가 되었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는 종이로도 쓰였다. 자작나무 ‘화樺’는 결혼식 첫날밤을 뜻하는 ‘화촉華燭을 밝힌다’의 빛날 화華에 나무 목木을 합친 한자다. 자작나무는 껍질과 잎에 기름샘이 있어 비싼 초 대신에 등불을 밝히는 나무였다. 자작나무도 ‘자작자작’ 타는 소리에서 유래한다. 1500여 년 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는 어떻게 천마총에 흘러들었을까?
※ 자일리톨
자작나무가 유명한 것은 ‘자일리톨xylitol’의 충치 예방 효과다. 충치는 음식물의 분해로 생긴 포도당과 과당 등이 뮤탄스균에 의해 발효되어 치아의 표면을 상하게 하는 병이다. 그런데 자일리톨에 의해 분비된 침은 당을 씻어내기 때문에 뮤탄스균은 당 대신에 자일리톨을 먹지만 소화하지 못한다. 또한 자일리톨은 체내에서 직접 에너지로 쓰이기 때문에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변화시키는 인슐린 호르몬이 필요 없어 당뇨병 환자들의 감미료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