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상

01. 벌초

flower-hong 2024. 9. 25. 22:48

음력 8월 1일... 제주에서는 비공식 벌초일이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는 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하는 벌초 방학도 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 "올해는 사람 구해시난 20만 원만 보냉 오지 말라"
 
몇 년 전부터 남들처럼 사람을 쓰자고 했다. 아버지, 형, 나, 친척 둘이 하기엔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100평 남짓한 공동묘지와 외떨어진 무덤 하나. 중산간에 위치한 공동묘지는 할만 하지만, 높이 2m, 폭 1.5 m 정도의 산담으로 둘러싸인 무덤은 쉽지 않았다. 돌 틈새로 요리조리 뻗어나간 칡덩굴, 들장미, 망개나무 등이 엉키고 설켜 있다. 낫으로 덩굴을 잡아 당길 때 일부 산담이 무너진 적도 있었다. 어느 해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등짝에 급발진한 땀띠로 고생했다. 
 
결혼 전에는 해녀, 결혼 후에는 철물점, 여관, 펜션 그리고 6천 평의 과수원을 한평생 일구어 오신 어머니는 타고난 일꾼이다. 농약치기, 가지치기, 감귤 수확 등 할 때면 인부들이 어머니의 진두지휘에 혀를 내두른다. 다음엔 힘들어서 안 온다고 할 정도다. 어린 시절, 토요일이면 '내일은 밭에 간다'는 하명이 떨어지면 종일 노심초사했다. 지금도 명절 때면 과수원에 해야할 일거리를 쌓아 두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가 드디어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다. 
 
"아! 어머니, 잘했네... "
"그렇게 해야지, 언제까지 돈 아끼멍 겅 힘들게 사쿠광"
"우리안티 안 줘도 좋으난 그초록 사람 쓰멍 삽써"
"겅허고 나도 가쿠다. 그래도 벌초는 해야지"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설, 벌초, 추석... 그리고 가끔 있는 귀향... 그동안 하늘에 뿌린 돈만 해도 빌라 한 채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 푸르른 하늘과 구름... 그런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반기던 바다가 이번에는 조금 달라 보인다. 신창의 한경풍력발전단지에서 시작된 풍력발전기가 차츰 영역을 넓히더니 협재 바닷가 앞 비양도까지 들어섰다. 가끔 보이는 처음의 낯선 모습은 설레는 이국적 풍경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보이는 풍력발전기는 또 다른 낯선 제주다.
 
다음 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산소를 향한다. 그리고 형과 함께 새로 구입한 예초기와 도구들을 주섬주섬 내린다. 그런데 빌렸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묻는다. 

"빌린 사람은 언제 왐쑤과?" 
"사람? 니 온댄 허난 오지 말랜 해부렀쪄"
"예? ............."
"무사 겅햄쑤과!! 그러지 말래니까. 그럴 거면 내가 안 왔지."
"한 사람만 쓰면 모두가 편한데 무사 겅햄쑤과..."
"얘야. 말 말라... 한푼이라도 조냥허멍 살아사 혼다. 돈이 어디서 그냥 남시냐"
 
결국 올해도 그렇게 벌초했다. 하나의 위로라면 외떨어진 무덤으로 가는 길에 만난 보고 싶던 나한송 열매였을까? 80 평생을 그렇게 조냥 정신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벌초를 하기 위해 오고가는 이틀과 왕복 항공료 14만원, 공항주차료 3만원, 렌트카 6만원, 연료비 2만원... 약 25만원... 벌초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렇게 될 지는 미지수지만...  
 
"내년부터랑 돈 부치쿠다"

깔끔하게 정리된 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