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울교대의 풀꽃나무
29. 매화
flower-hong
2025. 4. 6. 15:21
매화는 매실나무로도 불리며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맏이로 그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雪中梅), 달 밝은 밤의 월매(月梅), 옥 같은 옥매(玉梅), 향기가 진한 매향(梅香), 들판에 피면 야매(野梅)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볼매’다. 꽃잎을 떨군 꽃받침마저 여느 꽃 못지않게 예쁘다.

조선 최고의 매화 로맨스는 퇴계 이황(1502~1571)과 관기 두향이었다. 소설가 정비석(1911~1991)의 “명기열전(1982년)”에 의하면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퇴계의 학문과 인품에 반했다. 부인과 사별한 퇴계도 시·서·가야금에 능한 두향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퇴계 48세, 두향은 18세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형 이해가 충청도 관찰사로 발령받자 상피제에 따라 퇴계는 풍기군수로 떠나야 했다. 내일이면 떠난다는 말에 두향은 눈물 머금은 시를 써 내려갔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두향은 수석과 매화 화분을 건넸다. 이후 두향은 퇴계와 거닐던 남한강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살며 그를 그리워했다. 벼슬 후 안동의 도산서원에 은거하며 매화를 매형, 매군, 매선으로 불렀던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매형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 퇴계의 부음에 사흘 길을 걸어 안동을 찾은 두향은 조문 후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 단양군에서는 해마다 두향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