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계절 풀꽃나무_3

29. 조삼모사의 밤나무

flower-hong 2025. 6. 22. 12:41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 녹음 짙은 산마다 솔brush 모양의 베이지색 밤꽃이 한창이다. 밤나무가 저렇게 많았던가? ‘밥이 열리는 나무’에서 유래한 밤은 관혼상제 예식에 대추와 함께 반드시 올라가는 열매였다. 밤송이 안에 든 세 개의 밤알은 삼정승을 상징하며 후손들의 출사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밤나무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가졌을 때였다. 전설에 의하면, 산신령이 밤나무 100 그루를 잘 기르면 호환을 면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그루가 죽고 말았다. 이에 호랑이가 율곡을 채가려 하자 옆의 나무가 “나도 밤나무다.”라고 우겨 호환을 면한다. 주로 서해안에 자생하는 나도밤나무는 잎 모양만 밤나무와 비슷할 뿐이다. 율곡栗谷도 밤나무골로 불렸던 그의 고향 파주 율곡리에서 유래한다.
 
너도밤나무도 비슷하다. 산신령이 밤나무 100그루를 잘 기르면 울릉도에 호환이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한 그루가 모자라서 옆의 나무가 “나도 밤나무다.”라고 하자, “너도?”에서 유래한 너도밤나무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너도밤나무는 잎 모양과 열매의 맛이 밤나무와 비슷하다. 그런데 울릉도에 웬 호랑이일까?
 
목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운 밤나무는 가구와 건축, 제사용품에 두루 쓰인다. 그렇지만 밤 하면 역시 가시 돋친 밤송이다. 대개 열매는 과육 안에 씨앗이 있어 짐승이 먹고 난 후 여기저기 배설하면서 번식한다. 그런데 밤알은 그 자체가 씨앗이기 때문에 씹지 못하도록 가시로 보호한다. 게다가 속껍질마저 단단하다. 번식과 생존을 위한 이중잠금장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 밤벌레가 나온다. 밤나무의 방어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어느 덧 양구 ‘펀치볼’이다. 해발 1,000 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펀치볼은 주변보다 높이가 낮은 분지로 한국전쟁 당시 UN군이 이 일대가 파티용 음료인 ‘펀치punch’를 담는 그릇bowl을 닮았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이 지형은 운석이 충돌한 흔적 같지만, 분지의 화강암이 주변의 변성암에 비해 물러서 오랫동안 풍화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펀치볼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있어서 군부대의 통제를 받는다. 그 입구에는 ‘적군을 전율케 하는 ○○부대’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전율戰慄...
 
노나라 임금이 재아에게 ‘사社’에 대해 물었다. 사는 나라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으로 주위에는 나무를 심는다. 이에 재아는 “하후씨는 소나무를, 은나라는 잣나무를 심었는데 주나라가 밤나무를 심은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케 하려는 것입니다.”라 말한다. '밤나무 율栗'이 두려움을 뜻하는 전율戰慄의 '율'과 발음이 같아 자의적 설명을 덧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마다 다른 나무를 심은 것은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노 임금이 백성들을 엄하게 다스릴까 염려하면서도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겠으며, 끝난 일이라 바로 잡을 수도 없고, 지나간 것은 탓하지 않겠다(기왕불구旣往不咎)’라는 말로 훈계했다.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더 유명한 고사성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원숭이를 키우는 송나라 저공이 차츰 원숭이가 늘어나 먹이가 모자라자 밤을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준다고 했다. 이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바꾸니 잠잠해진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나무랄 때 쓰이지만, 원래는 원숭이들의 불만에 대하는 저공의 유연성과 소통을 강조하는 우화였다.
 
그런데 원숭이들은 과연 어리석었을까? 상품 프로모션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과자 100개들이에 100개들이 하나를 더 주는 ‘1+1’과 50개들이 두 개를 주는 ‘1+2’ 행사에서 소비자들은 후자를 선호했다. 이처럼 판매 방식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프레이밍 효과’라고 한다. “넛지”(2008년)의 저자인 리처드 탈러는 이를 행동경제학으로 확립하여 노벨경제학상을 수상(2017년)했다. 경제학은 합리성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합리성 혹은 심리에 따라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측면의 현재 가치에서 원숭이가 받는 도토리는 7개지만 아침에 4개 받는 것이 이득이다. 화폐의 현재 가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미래 가치보다 높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고 노심초사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시간의 대가가 ‘이자’다.

벚꽃으로 화려했던 봄이 지나면, 산은 아까시나무 꽃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밤꽃으로 단장해가는 밤나무에서 노벨경제학상의 행동경제학보다 훨씬 앞서 조삼모사를 선택 했던 저공의 원숭이를 새로이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