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불타는 떨기나무, 백선
야트막한 야산에서 한 눈에 확 띄는 꽃... 시원스레 쭉 뻗은 줄기 곳곳에 활짝 핀 꽃잎이 예사롭지 않다. 줄기에는 붉나무 같은 날개가 있으며 다소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백선白鮮’이다. 이름마저 신령한 기운을 풍긴다. 별 모양의 열매도 특이하다.
백선은 흴 ‘백白’, 고울 ‘선鮮’으로 흰 꽃이 곱다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뿌리가 봉황을 닮은 인삼을 특별히 봉삼이라 부르는데 이와 비슷한 백선도 덩달아 봉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의보감”(1613년)에 의하면 백선은 양고기 누린내가 난다는 ‘백양선白羊鮮’에서 유래한다. 노루오줌, 쥐오줌, 말오줌때, 계요등처럼 양 누린내 나는 백선인 것이다. 백선은 봉삼이라는 이름 덕에 한때 특별대우를 받았다. 특히 백선 뿌리로 담근 ‘봉삼주’는 강장제로 인기였다. 그러나 백선은 독성이 있어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

백선의 누린내는 오돌토돌한 샘털에서 나오는 정유에 기인한다. 린네는 딸이 서양백선에 불씨를 갖다 대자 불붙는 것을 보고 ‘'불타는 떨기나무burning bush’라 불렀다고도 한다. 성경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불타는 떨기나무’의 후보 중 하나도 서양백선이었다. 그러나 불타는 떨기나무로 추정되는 식물들 중에서 스스로 불타는 것은 없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1~5)”」
그렇다면 자연 발화되는 식물은 없을까? 북아프리카 원산의 시스투스cistus는 주위에 다른 식물들로 서식지가 빽빽해지면 발화점이 낮은 휘발성 오일을 내어 자신과 주위를 태워 버린다. 별명도 ‘자살하는 꽃’이다. 시스투스 씨앗은 내화성 강해 잿더미를 양분으로 싹튼다. 시스투스의 발화發火는 자손의 발화發花를 위한 모정인 것이다.
아침에 피어 정오가 지나면 시들기 때문에 '반일화'로도 불린 시스투스는 몰약의 원료이기도 했다. 성경에서 몸을 정결케 하며, 종교의식, 진통제, 방부제 등에 사용되었던 몰약은 두 종류다. 하나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린 몰약으로 몰약나무에서 채취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또 다른 하나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야곱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 총리가 된 아들 요셉에게 예물로 보낸 몰약이었다. 이는 가나안의 아름다운 소산물 중 하나로 시스투스에서 채취한 것이었다.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창43:11)」
시스투스는 영어로 ‘바위 장미Rock rose’라 불릴 정도로 모래땅이나 석회질의 척박한 이스라엘 땅에서도 잘 자란다. 혹시 ‘불타는 떨기나무’가 시스투스는 아니었을까? 양 누린내 나는 백선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지나 시스투스로 이어지는 뇌피셜이다.
어느 날... 입가에 옅은 반점이 생겨 피부과를 찾았다. 가렵지도 아프지도 특이한 증상도 없어 병명 진단이 애매하단다. “혹시 버짐인가요?” 물었다. “버짐이 뭔가요?” 의사가 반문하며 검색한다. 젊었지만 그래도 피부과의사인데 버짐을... “아! 백선白癬이요? 백선은 아니에요.” 나와 피부과의사를 당혹케 했던 반점은 열흘 만에 종적을 감추었다.
※ 백선 : 피부의 진균 감염으로 빨갛고 비늘진 원형 피부 발진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