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계절 풀꽃나무_3

10. 못 먹어도 고, 우산나물

flower-hong 2025. 4. 12. 11:56

“쟤는 무슨 모양 같아?”라는 물음에 대뜸 “글쎄, 우산?”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우산나물은 그런 풀이다. 누구나 우산을 떠올리고 한 번 들으면 뇌의 엔그램에 저장된다. 솜털로 덮인 어린 잎은 차츰 자라면서 솜털이 빠지며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다. 토끼가 쓰는 작은 우산, 토아산兎兒傘으로도 불린다.
 

우산나물

 

우산에서 떠올린 것은 프랑스에서의 비오는 날 풍경이었다. 우산은 시야를 가리고, 뾰족한 끝이 위험해서 그들은 웬만한 비는 그냥 맞거나 레인 코트를 입고 다닌다. 우산 쓰는 것이 약해 보인다는 마초이즘도 있다지만, 우리의 장대비와는 달리 안개 같은 보슬비가 내리는 기후적 특성은 아니었을까? 비를 먼지처럼 툭툭 털면 걸을 만 했다.
 
흥미롭게도 화투에서 12월 비광의 수양버들 아래에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은 일본의 전설적인 명필 오노도후(894~967)였다. 그는 왕희지체에서 벗어나 일본 전통 서예의 기초를 닦은 '서예의 신'으로 평가된다. 그에게 다음의 일화가 전한다.
 
「붓놀림에 거침없던 그는 한 스승을 만났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글씨는 졸필이었다. 그는 붓글씨에 정진했으나 스승은 더 잘 쓰라는 말만 반복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낙담한 그는 우산을 쓰고 걷다가 작은 바위에 갇힌 개구리를 보았다. 소용돌이치는 흙탕물 속에서 개구리는 수양버들 가지를 잡으려 애썼으나 어림없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바람이 가지를 개구리 쪽으로 몰아치자 개구리는 폴짝 뛰어 올라 가지를 붙잡고 탈출에 성공했다. 순간 ‘아! 나는 저토록 필사적인 적이 있었던가?’라는 깨달음과 함께 붓글씨에 매진한 그는 일본 최고의 명필이 되었다.」
 
화투를 내리 꽂으면서 ‘못 먹어도 고’를 외치던 ‘비광’에 그런 일화가 있었다니... 이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서예와 떡 썰기 일화처럼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나물은 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식물이나 채소를 조미하여 만든 반찬으로 우산나물은 식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나물이 그렇지는 않다. 우산나물과 비슷한 삿갓나물은 독초다. 우산나물은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돌아가면서 난 잎이 2열로 깊게 갈라지지만, 삿갓나물은 7~8장의 잎이 톱니가 없고 갈라지지 않는다.
 
우산은 정치적 상징으로도 쓰였다.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조지아의 장미 혁명(2003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2004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 혁명(2005년), 레바논의 백향목 혁명(2005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2010년), 대만의 해바라기 혁명(2014년) 그리고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불린 우산혁명(2014년)이 그것이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홍콩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50년간 유지하겠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하지만 간선제로 선출되는 행정장관은 친중파 인사가 당선되기에 유리한 구조였다. 2014년 야당은 직선제를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러나 중국은 후보를 중국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만이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학생과 지식인을 시작으로 중고등학생까지 경찰이 쏜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면서 시위했던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 일어난 것이다.

우산혁명은 무위로 돌아간 5년 후,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보내 재판받게 하는 '범죄인 송환법'으로 다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틈타 중국은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 민주화 운동은 끝나고 말았다. 2022년 선거에서는 중국이 낙점한 단 한명의 후보가 9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물건은 볼펜과 우산일 것이다. 한 해 분실되는 우산이 4,000만 개로 추정될 정도다. ‘아~ 또 우산을 잊어 버렸네.’라고 아쉬워하며 건망증을 탓할 것은 없다. 그렇게 우산은 우리 곁을 떠난다. 비가 오고 그치는 날에... 비오는 장면이 유달리 많았던 영화 ‘클래식(2003년)’과 함께 본 적 없어도 제목은 기억하는 ‘쉘부르의 우산(1964년)’을 떠올린다.

※ "훈민정음 해례본(1443련)"에 우산은 '슈룹'으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