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계절 풀꽃나무_3

04. 독새기와 병아리꽃나무

flower-hong 2025. 3. 27. 11:16

다솜채 옆 알록달록한 건물... 과학관을 리모델링한 서초구립 사향어린이집이다. 2017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린이집 화단에 우연인 듯 피어난 병아리꽃나무의 하얀 꽃잎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우리나라 원산의 병아리꽃나무는 장미과에 속하지만 꽃잎은 네 장이며, 열매도 네 개로 식물의 잎과 꽃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피보나치수열을 따르지 않는다. 윤기 나는 까만 열매는 치명적인 독성을 갖고 있다. 꽃잎이 커서 개함박꽃으로도 불린다.

 

병아리꽃나무

 


「나리 나리 개나리 / 입에 따다 물고요 / 병아리떼 종종종 / 봄나들이 갑니다」

동요처럼 병아리하면 개나리 같은 색깔의 노랑 병아리를 떠올리지만, 토종 병아리는 병아리꽃나무의 꽃처럼 흰색에 가깝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앞에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던 병아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병아리 감별사에 의해 퇴출된 수평아리로 키워도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도살 처리되기 때문에 동물보호단체의 고발과 압력이 이어진다.

병아리 감별사는 병아리 항문을 손으로 열어 생식 돌기의 형태와 색상 등으로 암수를 구분한다. 우리나라 병아리 감별사는 감별 능력이 뛰어나 전 세계 감별사의 60%를 차지하며 1960~1970년대에는 광부, 간호사들과 함께 독일에 전문직업인으로 파견되기도 했었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2021년)’의 주인공 부부도 병아리 감별사였다. 아빠가 병아리 수컷을 왜 폐기하는지 묻는 아들에게 말한다.

「맛이 없거든. 알도 낳지 않고. 그러니까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오래 전, 두 남매가 학교 앞에서 수평아리 두 마리를 사온 적이 있었다. 가끔 닭으로 키웠다는 경험담도 있지만, 병아리는 체온이 40도가 넘는 어미 닭이 30도 이상으로 따뜻하게 품어야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금지옥엽 보살펴도 대부분은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동심에 상처를 남긴 두 마리도 그랬다.

사향어린이집 화단에는 흰 꽃이 애기처럼 앙증맞고 귀여운 애기나리도 꽃을 피웠다. 병아리꽃나무와 애기나리의 콜라보다. 이들을 알고 심은 걸까? 잎이 둥굴레와 비슷한 애기나리는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번식한다. 가지 끝에 핀 하얀 꽃은 엄마 손 잡고 뒤에 숨은 애기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애기나리

 


병아리꽃나무에서 떠올린 독새기... 제주에서는 달걀을 닭의 새끼라는 ‘독새기’라 부른다. 어린 시절, 수시로 심술 독을 피우던 나는 또 다른 독새기였다. 서로 싸워도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던 형과 달리, 나는 단식 투쟁으로 부모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곤 했다.

아침을 거르고 도시락도 팽개친 채 등교한 어느 날 점심시간... 도시락을 병아리처럼 가슴에 품고 오신 어머니가 교실 복도에 서 계셨다. 하얀 쌀밥 위에는 독새기 부침 두 개가 얹혀 있었다. 그 후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마음 한 구석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잔상으로 남아있다.

더 어린 병아리 시절, 탁아소 간식은 부침개였다. 한 입에 먹기가 아까워 형과 콜라병 마개로 동그랗게 찍어내서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한 번은 쉬어야 넘을 수 있었던 언덕... 형과 함께 바위에 앉아서 나머지를 마저 먹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사향어린이집의 병아리꽃나무와 애기나리의 그 날들이다.

부부싸움으로 밥을 거른 어느 날... 딸이 방문을 빼꼼 열고 묻는다. “아빠는 왜 화나면 밥 안 먹어?” 아! 난 여전히 어른 독새기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 피보나치수열 : 1, 1, 2, 3, 5, 8...처럼 첫째 및 둘째 항이 1이며 그 뒤의 항은 바로 앞 두 항의 합인 수열.
※ 탁아소 : 어린이집을 예전에는 탁아소라 불렀다.